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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6 많이 아는 것과 이해의 상관관계-정수장에서 문득.. (3)
많이 아는 것과 이해의 상관관계-정수장에서 문득..
(내가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찰)
 
[다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나의 개똥철학임으로 문제제기와 오류를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지식의 수준상 절대적이거나 철학적이다 자부하고 싶진않다는 것에서 이 글을 보고 비판하거나, 다른 부분들을 고찰해 보는 것은 자유로 두고 싶다. 건전한 비판과 고찰이 있었음 좋겠다. 그것이 내가 좋아 하는 것이기에....]

누구나 학습하지 않아도 자신은 잘 알수 있다.
하지만, 남을 안다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도 안다는 것이며, "자신만을 아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자신만 아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이들을 "많이아는 사람"으로 가정하면 "많이아는 사람"은 남이 곧 자신이기에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기 마련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해 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는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라는 것"상대를 나와 동일시하는 것(encounter) 그리고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는 것(encounter)"⒜ 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내가 인정받고 싶어하듯, 상대방도 그러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며,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 귀추 됨으로 상대적으로 "적게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는 것을 행동으로 보이지 못함으로, 안다하는 것을 증명하지 못함은(행동적인 부분을 동시에 위에서 다루고는 있으나), 내가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부분에서 벗어남으로 다음 고찰로 미루기로 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상으로 위의 내용을 나에게 비추어 봤을 때, 나는 많이 아는 것이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며, 다른 말로하면 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의 한계를 또 다시 깨닫게 되는 하루 였다.

 

 

 

 

 


⒜앞과 뒤의 문장은 같은말 같지만 다르다. 그 이유는 나와 상대를 동일시 하는 것은 쉽다. 그냥 나를 상대방의 입장으로 조우(encounter)시켜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를 나와 동일시 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다. 그것은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내가 해보지 못한 일을 상대는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내가 했다고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go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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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e2day.textcube.com BlogIcon 수다공작소 2010.04.07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좀 다르게 생각해요.
    자신을 잘 아는 사람만이 남들도 잘 알 수 있다고 봐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요.
    실상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들 떠들어대지만,
    그 내면의 시커먼 속은 알 길이 막막하죠.
    오죽했으면 우리가 인지하는 것을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했겠어요.
    고로,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자신부터 잘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눈의 대들보부터 봐야지 남의 눈의 티를 대들보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gofly.textcube.com BlogIcon goFly 2010.04.12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 저도 동의 합니다. 그런데 항상 그 자기 성찰이 참 어렵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남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거 같구요^^ 그리고 그런 일을 겪게 되었을 때의 어떤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 이글에서 단지 순간의 행동속 본래의 의도 또는 감정처럼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들은 자신은 잘 알 지만 남들은 몰라준다는 이야길 장황하게 풀어 본 것입니다. 나를 오해하는 사람 자신이 자기 성찰을 하고 저와의 조우(Encounter)를 시도한다면 오해가 어느 정도 줄겠지만, 대부분은 보고 느끼는 대로 판단을하게되죠. 예를 들자면 세상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잘못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지옥을 만들고 그곳으로 인간을 보내는양 생각하고 있다거나,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해보이기만 한다는 것, 예수천당 불신지옥 등등의 내용인데 이렇게 본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지옥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인간을 그곳에 보내는가 하는 부분은 설명드릴 수 있지만 생략할꼐요ㅎㅎㅎ). 그냥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머 기독교 예가 조금 그러면 부모님의 사랑도 좋은 예가되겠네요. 사춘기 소녀에게 부모는 마냥 싫은 존재지만, 아무리 그들이 그렇게 생각해도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내면의 것을 보려하기 보다는 보여지는 부분만 보려한다는 것이 저를 조금은 가슴아프게 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답니다. 그런걸로 일이 좀 있었거든요. 사실 저도 남을 이해하는게 쉽지만 않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네요. 위에 이야기 하다보니 저는 마치 잘하고 있느냥 하고 써놓은듯 해서요^^ 그냥 괴리감이 좀 들어서 위 글을 썼습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의견 달아 주셔서 감솨합니다...^^

    • Favicon of http://gofly.textcube.com BlogIcon goFly 2010.04.12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참 또 이야기 하고 싶었던건 단지 학습이 많다고해서 또는 학습점수가 높다고 해서 많이 아는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많이 아는 것은 자신을 앎을 넘어서서 자신을 비춰 상대방까지 생각하는 것이 더 많이 아는 것이니 학교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더 많이 아는 것으로 생각지 말고, 진정 많이 알아 존경을 받고 싶다면 이해와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진정한 많이 앎과 타인의 이해 및 배려의 상관 관계를 다시 비춰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이든 어느 나라든 궁중에서 예절을 따로 가르치고 중요시 여긴 이유 그리고 그 작은 예절 하나에 사람의 소양을(나라의 평균적 교양과 직결되죠) 평가했던 과거를 보면서 좀 배웠으면 했던 것도 있습니다. 요즘 그런거 많지안습니까 조금 배웠다고 메너를 지키지 않는다거나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영 꽝인 사람들...최소한의 법이 양심이듯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는 예의와 범절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좀 안다고 유세떠는 사람들에게 제발 진정 많이안다고 하려면 소양도 좀 갖췄으면 했답니다...;;제주제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