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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1224년(혹은 1226년) 이탈리아의 나폴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나폴리 대학에서 수학하고, 1245년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 곳에서 당시 대학자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는데, 그와 함께 몇 해 동안 쾰른에서 연구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10 년 여를 파리 대학에서 보낸다. 그런데 당시의 파리 대학은 신앙과 이성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1215년 로마 교황청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를 금지하고, 1231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담긴 오류를 시정하도록 권고한 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250년 경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강의금지령이 해제된 후에도, 신앙과 이성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세기 철학자들을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중요한 두 개의 주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신앙과 이성의 긴장에 관한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보편자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아퀴나스의 입장을 살펴보면서, 13세기 중세기 스콜라 철학, 혹은 스콜라 신학에 대해 이해해 보기로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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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중요한 유산은 경험세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목적론적 세계관이다.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퀴나스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배웠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참된 지식은 신이 인간에게 빛을 비추어서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신의 조명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자연물도 실재로 간주하고, 경험과 인간 이성을 통해서 그러한 실재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중요시한 점은 아퀴나스의 신의 존재 증명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퀴나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신은 인간의 정신에 자명하게 드러난다는 이른바 선험적인 증명을 시도했지만,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가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토대로 한 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식된다고 설명함으로써, 경험적 신 존재 증명을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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