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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3 코기토의 철학자 데카르트
  2. 2010.05.03 이븐 루슈드(아베로에스) (2)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중세 철학을 만들고 발전시킨 것은 바로 이 둘이다. 이들 사이의 부조화를 발견하고 해결하여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것은 한 가지를 전제한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중세 학자들에게 이 둘은 의심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 즉 도그마(dogma)였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확고부동한 지위는 점차 흔들리게 된다. 성경 해석에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학적 권위를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했던 교황청은 루터 이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던 다양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독자적 지위를 위협했다. 다양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들로부터 우주와 인간에 대한 다른 생각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생각들이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는 것도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도그마의 위기! 이것이 15, 16세기 유럽의 지적인 분위기였다.

 

 

 

 

도그마의 위기는 회의주의(skepticism)를 낳는다. 여기서 회의주의란 절대적 진리,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회의를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이용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인간의 감각 경험은 불완전하다. 자라를 보고 놀란 당신은 솥뚜껑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설사 당신이 그런 착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감각 경험 그 자체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컴퓨터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당신 앞에 컴퓨터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 당신은 매트릭스 안에 갇혀 전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감각적 자극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컴퓨터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실제로 컴퓨터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단지 매트릭스로부터 전달된 전기 신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듯 감각 경험만으로는 이 세계가 매트릭스의 세계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할 수 없다.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감각 경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감각 경험에 대한 회의는 인간의 다른 지적 능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몽테뉴(Montaigne, 1533~1592)는 대표적인 16세기 회의주의자다. 당시 새롭게 발견된 퓌론주의(Pyrrhonism)에 경도된 사상가들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불완전하다고 강변한다. 이 회의주의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주의는 극복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회의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다양한 과학기술들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이런 유용한 과학기술들은 다양한 감각 경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감각 경험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과학기술들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철저한 회의주의자들은 과학기술들을 신뢰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과학기술의 유용성 같은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문제다. 특히 과학혁명 이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과학에 의해서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인류는 진보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더 나아가 이것을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식의 확실성을 부정하는 회의주의는 당연히 극복해야할 장애물이었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

 

그럼 어떻게 회의주의를 극복할 것인가?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획득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개연적인 진리는 획득할 수 있다는 온건한 주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은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지식의 유용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와 달리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즉 인류가 절대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거나, 혹은 그런 절대적 지식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이 일을 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이다. 그는 회의주의에 맞서, 인간 지성은 절대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그런 절대적 지식을 제시한다. 그의 목표는 이성을 사용하여 철학적 진리, 즉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의 투렌(Touraine)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이후 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다. 말년에는 스웨덴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철학을 존경하던 스웨덴 여왕의 초청 때문이었다. 결국 1650년 데카르트는 스웨덴의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근대 철학의 두 기둥이었던 합리론과 경험론 중에서 합리론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는 과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말할 때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아퀴나스가 훌륭한 철학자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신학자였다면, 데카르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다.

 

데카르트를 초청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과 데카르트(맨 오른쪽).


이제 설명해보자. 그는 어떻게 철학적 진리에 도달했으며 그렇게 해서 도달한 철학적 진리는 무엇인가? 회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회의, 즉 의심이었다. 그는 회의주의자들의 의심을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 밀고 나가고자 했다. 만약 그런 의심이 성공적이라면, 그런 의심의 끝에서 더 이상 의심될 수 없는 무언가가 발견되리라고 기대했다. 이런 의심의 방법을 철학자들은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끝에 결코 의심될 수 없는 것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의심하는가? 우리는 모든 개별적 지식들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의심할 수 있는가? 이런 의심은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심스러운 개별적인 지식들은 그 수가 무척 많고 또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철저하고 완벽한 의심을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길은 그런 다양한 개별적 지식을 낳는 지적인 방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지식을 낳는다고 여겨지는 지적인 방법들이 과연 확실한 진리를 보장하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지식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획득되는가? 아마도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각 경험을 통한 지식의 획득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 내 앞에 있는 노란색 지폐가 5만원권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감각 경험이라는 방법은 지식의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착각했을 수 있다. 사실은 5천원권 지폐인데, 나의 기대와 희망이 5만원권 지폐로 착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감각 경험은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논변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꿈의 가설이다. 나는 어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으며, 그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꿈 속에서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무언가를 본다. 즉 감각 경험은 꿈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 경험만으로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단지 꿈 속에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즉 감각 경험은 우리에게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꿈 속이든 꿈 밖이든 항상 성립하는 것도 있다. 가령, 2+3=5라는 것은 꿈이 아닌 세계에서도, 꿈에서도 참이다. 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2+3=5이고, 삼각형은 세 개의 변을 가지며, 둥근 사각형은 불가능하다. 꿈에서도 이런 지식이 성립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러한 수학적 지식들을 획득하는 데 있어, 감각 경험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지식들은 감각 경험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성, 직관, 연역과 같은 다소 어려운 철학적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의도를 이해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굳이 그런 개념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 지식의 확실성이 보장되는지 여부다. 이 순간 데카르트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덧붙인다. 그것은 유명한 ‘악마의 가설’이다. 전능한 악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수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 즉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그 악마가 만들었다고 해보자. 더불어 악마는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지식을 획득할 때마다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도록 장치를 해놓았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우리가 ‘2 더하기 3이 5’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 놓은 속임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악마가 존재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정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획득한 지식의 확실성 역시 충분하게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수학적 진리를 포함해서 가능한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그런데, 의심에 의심을 계속하던 데카르트는 의심의 끄트머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라는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는 제일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방법서설] 중에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하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지금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매트릭스로부터 전기 자극을 받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지금 전능한 악마에서 철저히 속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임을 당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의심을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의심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보통 ‘코기토’라고 불리는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데카르트가 찾아낸 절대 확실한 철학적 진리다. 그런데 코기토에 등장하는 ‘나’는 무엇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있어 나의 물질적인 부분, 즉 신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결국 코기토에 등장하는 ‘나’는 사유하는 무엇 혹은 정신적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데카르트는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라는 두 도그마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새로운 도그마, 즉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이고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철학은 신독단론(Neo-dogmatism)의 일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의심의 끝에서 정신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획득한 데카르트는 이제 다른 명징한 진리들을 찾아 나선다. 그 첫 시작은 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질적인 것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다. 방금 언급했듯이 정신적인 것의 존재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정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과 철저하게 구분되며, 그것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있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독립적인 두 실체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원론이라고 불린다. 정신적인 것의 본질은 사유이며, 물질적인 것의 본질은 연장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하다. 정신적이라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며, 물질적이라는 것은 시공간 좌표의 어딘가를 점유한다는 말이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여러 동물들 중에서 우리 인간만이 이 두 가지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신체를 가지고도 있다. 이런 데카르트의 철학을 20세기 심리철학자인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1900~1976)은 ‘기계 속의 유령(the ghost in the machine)이라고 비꼬았다. 사실 데카르트의 이런 심신(心身) 이원론은 20세기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에 있어 극복해야 할 안티테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심리철학 교과서들은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서 시작하며, 그것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현대 철학 이론들을 소개한다.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의 문제점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 그의 심리철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이 서로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이 둘이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은 어느 하나가 없어도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정신이 없는 기계일 뿐이다. 천사나 신과 같은 것은 물질적인 것에 구속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일 테다. 암튼 이 둘은 서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의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견 우리의 경험과 잘 맞지 않는 듯이 보인다. 당신의 신체는 당연히 당신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가령, 당신의 신체 중 일부가 불에 데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신체의 변화가 당신의 마음에 어떤 고통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서 당신은 생각하고 되도록 그것을 피하려고 마음먹을 것이다. 반대 방향도 역시 성립한다.

데카르트의 주요 저작인 [방법서설]의 표지.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신체에 영향을 준다. 손을 올리고자 하는 당신의 의도(정신적인 것)는 당신의 손이 올라가는 것(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서로 인과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에서는 이런 인과적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독립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보통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라고 불린다. 물론 이것은 데카르트 철학 특유의 문제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리철학 이론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했지만 여전히 문젯거리로 남아있다.

 

 

 

 

  1. 퓌론주의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학설이며, 이것의 존재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에 의해서 기록되어 알려졌다. 기원전 3세기 말 경에 살았던 퓌론(Pyrrho)의 이름을 딴 것이다. 퓌론주의에 따르면 진리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진리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2. 심리철학

    마음에 대한 연구를 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최근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주장하는 현대 철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심신일원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심신일원론도 행동주의, 심신동일론, 기능주의 등으로 다양하다.

 

 

 

박일호 / 경희대 포스트 닥터 연구원
대학에서 건축공학, 대학원에서는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에서 확률과 인식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몇 가지 교양 과학책을 번역했으며, 논리학과 분석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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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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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루슈드를 아는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터번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바로 이븐 루슈드다.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로, 유럽에서는 아베로에스(Averroes)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단테가 쓴 [신곡]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들과 함께 ‘림보’(기독교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가는 곳)로 간 인물로 나온다. 이슬람 철학자가 왜 로마 바티칸 궁 벽화에 그려졌을까? 그는 아랍어로 기록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번역해서 유럽에 전한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26년간 이 작업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책에는 간단한 약론에서 자세한 상론까지 세 종류로 나누어 주석을 달았다. 만약 루슈드의 작업이 없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유럽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기독교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옷을 입힌 중세 스콜라 철학이 탄생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름 대신 ‘철학자’라는 보통명사로 통용되는 이가 있다. 이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킨다. ‘철학자’와 함께 ‘주석자’라는 호칭으로 거명되는 이도 있다. 이 주석자는 루슈드를 지칭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통상적인 표기 방식은 아니다. 처음 ‘철학자’와 ‘주석자’가 중세 유럽에 등장할 때 그들은 모두 이슬람 세계에서 건너 온 수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철학자가 그 혐의를 벗은 뒤에도 주석자는 철학자를 오독한 인물로 인용되었다. 주석자는 위대한 철학자를 오염시킨 간사한 이교도였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을 ‘루슈드 두들겨 패기’라고 부르고 싶다.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물, 또는 사상이 소개될 때 종종 나타나는 양상이다. 위험한 철학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감추다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속죄양을 만들어서 두들겨 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집단 광기가 동원된다. 한 마디로 마녀 사냥이다. 잠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그토록 위험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식을 존중하고 중용의 덕을 유난히 강조한 철학자가 아닌가? 상식과 중용의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소개한 이븐 루슈드를 위험한 인물로 두들겨 패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의문은 또 있다. 플라톤과 더불어 서양철학의 전통을 세운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이븐 루슈드에 의해서 유럽에 전해졌다는 말인가?


이 퍼즐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 유럽 세계에서 실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논리학에 대한 단편적 기록 이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철학의 숲> 아우구스티누스 편에서 본 바와 같이 중세 초기의 철학은 기독교에 플라톤 철학을 결합한 교부 철학이 성행했다. 그러면 도대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것은 이슬람 세계에서 건너왔다. 기독교 유럽에서 실전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이슬람 세계에서 계승 발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터번을 쓴 모습으로 그려진루슈드(아베로에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다.

 

 

 

 

14세기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이븐 루슈드(아베로에스)의 모습


흔히 중세를 암흑 시대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 페트라르카가 처음 쓴 암흑 시대라는 표현은 중세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가? 로마 제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지중해 세계의 질서는 크게 재편된다. 이슬람 세력은 북부 아프리카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넓혀나간다. 지금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이슬람 제국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 시기를 유럽에서는 암흑 시대라고 부르지만, 이슬람에서는 황금 시대라고 부른다. 물리적인 힘에서도 이슬람이 유럽보다 컸지만, 문화의 힘에서도 이슬람이 유럽을 압도하는 시기였다. 역사가는 이 때를 ‘이슬람의 황금시대’(750~1258)라고 부른다.

 

이븐 루슈드는 1126년 에스파냐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근대 이전의 대부분 학자처럼 그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당대 최고의 이슬람 학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칼리프(이슬람 교단의 최고 지도자)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궁정의사이기도 했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의학 분야에 남긴 그의 업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근대 의학이 출범한 곳으로 이름이 높은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의학부 교수들은 대부분 루슈드의 제자들이다. 기독교 세력에 의해 코르도바에서 쫓겨난 그의 제자들이 무더기로 베네치아 근처에 있는 파도바 대학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의학 분야에 관한 한, 당시 기독교 유럽의 학문 수준은 이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 분야에서도 그의 공헌은 크다. 과학사라는 학문을 개척한 20세기 과학사가 조지 사튼에 따르면 이븐 루슈드와 그의 주장을 따르는 아베로이즘(Averroism)은 16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았던 근대 이전의 시기에 과학의 역사는 곧 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튼은 마녀 사냥을 당했던 이슬람 학자 이븐 루슈드의 명예 회복과 역사에서 지워진 아베로이즘 4백 년의 역사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븐 루슈드가 주창한 학문이 고대 학문에서 근대 학문으로 넘어가는 진정한 이행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튼은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 루슈드가 잃어버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찾아 주었듯이, 우리도 루슈드 철학의 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철학의 눈으로 본 이븐 루슈드는 이성을 중시한 합리주의자다. 그것은 이슬람 교리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한 알 가잘리의 [철학자의 모순]을 재반박한 이븐 루슈드의 [모순의 모순]에서 잘 드러난다. 가잘리와 루슈드가 제기한 물음은 신학과 철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질문을 살짝 돌려서 말한다면 신앙과 이성은 서로 화합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잘리가 철학에 대한 신학의 우위, 또는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주장했다면, 루슈드는 가잘리의 주장에 대한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신학이란 이슬람 성전인 [쿠란]에 대한 해석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순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하디스]에서 기초한 이슬람 신학이며, 철학이란 고대 그리스 철학 원전에 대한 번역과 주해를 기초로 하는 철학 연구를 말한다. 루슈드는 이슬람 율법이 철학 연구를 결코 금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은 논증적 추론을 하는 철학 연구를 명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루슈드는 철학과 신학의 조화를 변호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철학이야말로 진리의 최종 중재자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주장은 후에 그가 이단으로 단죄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는 율법학자들이 주도하는 철학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되었을 때 코르도바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루세나에 감금되었고 그가 쓴 책들은 불태워졌다. 그의 나이 70이 되는 만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듬해 그는 감금에서 풀려났지만, 모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블랙 아리스토텔레스. 이슬람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으로 그려진다.

 

 

 

 

눈을 다시 유럽 세계로 돌리면, 루슈드는 오늘의 서구사상의 전통을 이어준 사람이다. 그는 서구 사상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중세 유럽에 전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사상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은 합리주의 전통을 이어준 인물이다. 그 점에서 기독교 유럽 세계는 루슈드에게 큰 빚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빚을 갚기는커녕 두들겨 팬 죄가 있다. 유럽의 눈으로 정리한 지적 풍토에서 루슈드는 때로는 이름 없는 적으로, 때로는 기독교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 침투시킨 ‘사상 전사’ 쯤으로 등장한다. 그러한 흔적은 루슈드를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평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가 그린 [아베로에스에 대한 아퀴나스의 승리](부분).

 

 

 

 

정재영 / 철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30대에 언론사 기자를 지냈다. 나이 40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워릭대에서 사회 존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리얼리즘 접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부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철학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권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고촐리가 그린 그림 [아베로에스에 대한 아퀴나스의 승리]는 스콜라 철학의 왕으로 칭송되는 아퀴나스와 그의 발 밑에 납작 꿇어 엎드린 루슈드를 대조시키고 있다. 과연 루슈드와 아퀴나스는 그런 사이인가? 그들은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를 각각 대표해서 서로 싸운 사이인가? 아니다. 이건 집단 광기가 빚어낸 창작이다. 루슈드는 이슬람 세계에서 박해를 받은 일종의 반체제 인사이며, 아퀴나스는 그 당시 수상쩍게 생각한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철학자를 소개한 주석자 루슈드를 적극 받아들여 방대한 신학체계로 녹여낸 인물이다.

 

유럽 출신인 과학사가 조지 사튼은 유럽 세계가 이슬람 세계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심정으로 이슬람 학자들을 만나 역사의 조각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렇다. 이것이 역사의 제 자리를 찾는 첫 걸음인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분명하게 밝혀 두자면, 나는 여기에서 이슬람 철학이 기독교 철학보다 낫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역도 아니다. 소통이 막힐 때 벌어지는 대결구도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루슈드는 소통의 길을 연 철학자지만, 닫힌 소통 구조에서 큰 피해를 본 철학자였다. 나는 루슈드를 통해 소통 공간이 막힐 때 나타나는 집단 광기를 읽는다. 루슈드가 아닌 아베로에스는 기독교 유럽을 위협하는 인물의 이름이었고, 아베로에스가 아닌 루슈드는 이슬람을 흔드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결코 환영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그의 철학은 이슬람 세계가 아닌 기독교 세계에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할까? 이슬람의 이븐 루슈드일까, 아니면 유럽의 아베로에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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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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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9901.textcube.com BlogIcon Jmi™ 2010.05.04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감사합니다. ^^
    저에게 철학은 넘 어렵기만 하네요. 철학적 글을 요약정리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답니다. ㅜㅜ

    • Favicon of http://gofly.textcube.com BlogIcon goFly 2010.05.06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누구에게나 철학은 넘 어려운듯합니다....

      제 전공은 아니지만 워낙에 생각하는 것을 좋아 하는 터라 철학을 좋아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기 위해 읽어야 하는 Organon이라고 하던가요....

      아무튼 오르가논에 해당하는 명제론과 범주론을 한국 유명 철학가가 가장 쉬운 해석본을 가지고 해석해 놓은 책을 읽었을 때도 4페이지 읽는데 일주일이 걸리더군요.....

      모두들 힘들어 하는거 같습니다.....힘내세요